꿈의 조각

The Sculpture of dreams_1920

                 이미경

 

나의 첫 번째 작업인 <꿈의 기호>는 대학 입학이 목표인 수험생의 꿈을 ‘관악산 밤하늘’로 형상화 해 ‘어사화’ 모양의 별을 달아 표현했었다. ‘북극성’에 의지해 잃어버린 길을 찾는 것처럼 어사화별을 나침반 삼아 어두운 밤길의 초롱불이 되어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였다.

 

두 번째 전시 작품의 제작은 수험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과의 공 동작업이다.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규정하였다. 19세는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경계에 있는 나이로,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에 직면하게 된다. 단계적으로 영유아기의 생리와 안정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사회화과정을 거치며 원하는 대학 입학을 통해 자 아실현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된 학생들이 겪었을 환희와 기쁨 그리고 상반된 아쉬움과 허탈함을 캔버스에 콜라주(collage) 하였다. 수험 생활의 걸림돌이었거나 성취의 대상이었던 과목의 문제집을 선택해 찢거나 붙이는 방법을 통해 모든 감정을 해소하고,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그들은 한다.

 

애증과 애정이 교차하는 과목의 문제집을 찢어 넓은 캔버스에 옮겨온 완성된 형상의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표현하기도 혹은 멈춰버리거나 퇴색되어버린 화석으로 표현되었다. 학생들이 ‘국·수’와 ‘영·국’이란 이름으로 지은 작품을 조명(빛)을 비춰 그들이 풀어낸 감정의 실타래들이 보여준 파편에 공감과 응원을 담아 촬영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책거리’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학동들이 열심히 한 권의 책을 끝낼 때마다 꽉 채워진 지식을 상징하는 송편을 나누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본인들의 모든 감정을 풀어내는 의식과 같은 퍼포먼스를 행한 후 아이들과 나눠 먹은 음식은 감정의 해소로 허기진 영혼을 위로해주고,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책거리’와 같았다.

 

<꿈의 조각-1920>은 합격의 기쁨 뒤에 숨어 있는 아쉬움과 허탈한 감정을 해소하고, 앞으로 성인기의 삶을 자신 있게 도전하기를 응원하는 작업이다.

다음 작업은 학생들의 애장품을 모아 아이들의 흩어졌던 감정을 기념물로 남기고 싶다.

 

 

꿈꾸는 사진 - 이미경의 마술이미지

 

                                   최연하(독립큐레이터, 사진평론가)

 

모든 것은 꿈이었다. 꿈의 처소는 희미하게 사라지거나 언제나 낭떠러지였다. 때론 너무 환해서 눈을 감아야했다. 맥락 없이 나타나는 사람과 사물들, 환상적인 칼라와 차가운 흑백이 뒤엉키고 어디론가 계속 질주하다가 깨어나곤 했다. 잠듦은 곧 꿈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고 깨어남은 꿈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깨어나기 싫어 붙잡고 있는 꿈도 있고, 화들짝 깨어난 현실이 꿈결처럼 부드러워 안도의 숨을 내쉴 때도 있다. 내게 꿈은 반복되는 일상을 멈추게 하는 사이렌이었다가 네잎클로버가 되어 손바닥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기에 아무런 기대 없이 기댈 뿐이었다. 꿈은, 다만 망상으로 그칠 때도 있지만, 꿈을 꾸는 자를 내치지 않고 꿈과 일체가 될 때까지 마법의 시간을 허락하기도 한다. 그렇다. 꿈-이미지는 요술이었다. 현실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마술이미지가 ‘꿈’이었던 것이다.

 

이미지가 곧 ‘마술’이 되는 경지는 이미지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는 낯설고 두려운 외부세계에 대응하기 위한 간절한 바람이 형상화된 것이다. 친밀한 공간(동굴)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이미지’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는 없지만 소중한 사람의 초상사진을 고이 간직하다보면 그리움이 전해져 화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영정사진 앞에서 올리는 애도의 기도는 죽은 이에게 닿아 결국 꿈에서라도 조우하게 한다. ‘이미지image’라는 말의 뿌리에 있는 ‘이마고imago'의 뜻이 ‘유령’인 이유이다. 유령처럼, 이미지는 죽어 있지만(살아 있는 것처럼) 산 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미지를 마술의 세계에 비유한 ‘빌렘 플루서’는 도래하는 이미지의 힘을 그의 책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에서 가늠하고 있다. 플루서는 문자가 없었던 시대인 선사의 시공간 자체가 마술적인 이미지공간이어서 그 때 탄생된 이미지를 ‘마술이미지’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마술이미지의 시대가 가고, 선형적인 역사(문자)시대가 열리면서 이미지는 문자 뒤에 숨어 새로운 형태를 꿈꾸기 시작한다. 새로운 기술인 디지털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사진(기술)이미지의 어떤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다.

 

빌렘 플루서의 사진 철학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선사시대에는 이미지가 곧장 ‘말’과 ‘행위’로 통하는 마술을 부렸기에 그대로 수용하면 됐지만, 역사시대 이후 디지털시대의 이미지는 ‘0과 1’ 코드 속에 숨겨진 텍스트까지 동시에 수용(해독)해야 ‘사진이미지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미지의 표층과 심층을 헤아리며 바라볼 때 진정한 이미지 향유가 가능하다는 것. 이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구도, 칼라, 빛, 질감 등)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보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 욕망과 기억 등을 버무려가며 공감각적으로 볼 때 이미지의 세계에 깊게 침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지는 단일하고 명백한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스스로 에니메이트(animate)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 해석을 기다리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이미경의 신작, <꿈의 기호>이다. 눈 밝은 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이 사진 속에는 과거 시험의 합격과 벼슬에 오르려는 염원의 상징들이 있다. ‘연과(연꽃의 씨앗, 연달아서 과거시험에 합격하라는 의미)’, ‘맨드라미(닭 벼슬 모양과 비슷해서 벼슬에 오르는 상징)’도 있고, 현대에 새롭게 의미를 띈 사물들, ‘포크와 도끼(답을 잘 찍으라는 의미)’, ‘거울(잘 보라는 의미)’이 촘촘히 직조되었다. 입시학원을 30여 년에 가까이 운영한 이미경에게 <꿈의 기호>는 그의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된 상징기호들이다. 이 기호는 한국의 입시 문화에 대한 이해와 대학 입시와 취직을 키워드로 하는 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흥미롭게 전달될 것이다. 이미지의 외시적인 측면(denotation)은 ‘연과, 맨드라미, 포크, 거울’이지만 함축의미(connotation)는 입시경쟁에 이미 진입했거나, 소위 입시 전쟁을 치루는 중인 수험생 가족, 혹은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무수한 입시 기관과 대학 등 보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사진 이미지의 표면에 싣고 있는 내용(디노테이션)말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이미지 속에 문자가 없는데도 ‘읽히는’ 이미지의 모호함과 다중성은 사진의 마술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행운의 이미지가 될 수도 있지만, 한 번 본 후 그저 눈감을 수도 있고, 안보면 그만일 수도 있다.

 

이미경은 30여 년 동안 입시생들을 직접 가르치며 수많은 학생들과 동고동락을 했다. 학생들의 꿈이 잘 발아되고 다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선생의 몫이고, 작품 <꿈의 기호>에서 선생이자 작가로서 이미경의 ‘꿈’이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삶과 일과 예술창작과 꿈의 세계가 동그랗게 반복되며,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그들처럼, 시원에 닿은 꿈의 자리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되었다. 환상으로, (불)가능으로, 성립되는 것이 꿈이듯,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전 과정에 마치 꿈을 꾸듯 드로잉과 페인팅, 사진 촬영과 포토샵을 반복하며 한 점씩 이미지를 만든다. 눈에 띄는 점은 꿈의 세계가 불안정하고 우발적이듯, 이미경의 사진에서 물속에 스며드는 물감과 ‘연과’와의 조우는 계획된 것이 아닌 순전한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사화, 맨드라미가 중심에서 부각되는 사진은 그 도드라짐으로 선명하고, 관악의 검은 실루엣은 아득한 웅장함으로 다가온다. 제각각 다른 꿈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기호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결합되어 의미를 형성하는데, 이미지기호는 스스로 말할 수 없다는 어려움에 봉착하기 쉽다. 그래서 수만의 해석이 가능한 잠재태인 것이다. 명확한 지시체를 가진 문자기호에 비해 이미지기호는 객관적인 해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창조해낸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읽힌다하더라도, 이미지 앞의 관객을 흡인하는 강렬한 힘을 이미지 스스로 가지고 있다. 이미경은 <꿈의 기호>에서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수많은 수험생들이 가진, 천변만화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으로도 환원이 불가한, 개성 넘치는 단독자를 팬시하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고 발산하는 그 옛날의 마술이미지를 수험생 모두에게 선물하려는 것이니, 만일 이 사진 작품을 보았다면 읍하며 행운을 받으시길!

꿈의 기호

                      이미경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을 느끼지 못할 만큼 누군가의 19살은 간절했다. 애타는 계절을 겪어봤기에 간절히 기원하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서 <꿈의 기호> 작업을 하게 되었다.

 

열렬한 마음을 전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비단 현대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회화 역사 전체에 걸쳐 바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흔적들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선사시대의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다산이나 풍요를 위한 염원이, 고구려 ‘안악 3호분’의 벽화는 망자의 내세의 평안과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대상의 모양이나 한문의 글자는 다르지만 음이 같으면 같은 뜻으로 해석되어 기원하는 마음을 회화에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묘작도’에 묘사된 고양이 두 마리와 나무 위의 참새는 각각 노부부와 자녀를 의미하며, 노부부의 장수를 기원하는 목적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이렇듯 인간은 본능적인 욕망을 해소하는데 그치는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의 바라는 욕망을 예술로 표현하고 예술로 ‘박제’함으로써 영구성을 부여해 왔다.

 

나는 <꿈의 기호>에서 조선시대 회화에서 그려지거나, 문헌에 등장하는 오브제 중 과거시험 또는 벼슬을 뜻하는 오브제 ‘연과’와 ‘여뀌’ 그리고 ‘맨드라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먼저 나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대입에서 성과를 얻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아크릴물감으로 표현한 후 다시 촬영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관악산’은 입시를 보는 19살 제 각각 다른 꿈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관악산 하늘의 별을 표현한 ‘어사화’들은 꿈을 실현하고자하는 간절한 바람, 즉 꿈의 실현과 환희의 표현이다. 이번 <꿈의 기호> 작업에서는 조선시대의 오브제뿐만 아니라 현대의 오브제도 담고 있다. 작품에서 표현된 현대의 오브제들은 수험생의 친구나 지인들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잘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선물들이다. 이러한 선물들은 깊은 뜻이 담긴 물건이라기보다는 물건의 기본적인 역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거울(시험 잘 봐), 도끼·포크(답 잘 찍어라) 등 이다. 작업에서 거울·도끼·포크의 오브제로 현대인들의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다가오는 11월에는 수험생들이 오랜 기간 준비했던 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글을 깨우친 순간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학 입시, 저마다 꿈의 위치는 다르겠지만 꿈에 도달한 이들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아직 꿈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환희와 좌절의 갈림길은 극명하지만, 지나치게 기뻐할 일도 슬퍼 할 일도 아니다. 꿈을 간직한 모든 이들은 꿈은 이루어 질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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